많은 인사담당자들이 채용 과정에서 비슷한 어려움을 겪습니다. 공고를 올려도 지원자가 없다거나 지원자는 많은데 막상 면접 볼 사람이 없다거나 하죠. 큰맘 먹고 뽑았는데 3개월 만에 그만두는 등 우리가 원하던 사람이 아니었던 경험, 다들 있으실 겁니다.
매번 반복되는 이 채용의 악순환은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요? 많은 경우 문제는 시장이나 지원자가 아니라, 우리에게 어떤 사람이 필요한지 명확히 정의하지 않은 채 급하게 공고부터 올렸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인사 업무를 맡아 채용을 처음 진행해보는 실무자, 혹은 매번 채용에 실패했던 분들을 위한 실용적인 가이드입니다. 오늘은 직무기술서라는 거창한 단어 대신, 채용 실패를 막아주는 우리 회사만의 인재 정의서를 작성하는 간단하고 실용적인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직무기술서, 왜 반드시 작성해야 할까요?
인사팀이 따로 없는 곳에서는 "그냥 공고 올리면 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직무기술서 작성은 절대 서류 작업이 아닙니다. 이 문서 하나가 채용의 성패를 가르는 필터가 됩니다.
첫째, 느낌이 아닌 객관적인 기준으로 뽑게 됩니다. 직무기술서가 없으면 우리는 인상 좋은 사람, 말 잘하는 사람처럼 모호한 느낌에 의존해 채용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인상이 좋다는 것이 업무를 잘한다는 것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직무기술서는 이 사람이 입사하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를 명확히 정의합니다. 이는 면접에서 우리가 확인해야 할 단 하나의 명확한 기준이 됩니다. 이 기준이 없으면 우리는 A지원자에게는 A를 묻고 B지원자에게는 B를 물으며 객관적인 비교 자체를 할 수 없게 됩니다.
둘째, 우리와 맞지 않는 지원자가 알아서 지원을 포기합니다. 경력 3년 이상, 꼼꼼하고 성실한 분. 대부분의 채용 공고가 이렇게 모호합니다. 이런 모호한 공고는 모호한 지원자들만 끌어들입니다. 반면 주 2회 콘텐츠 블로그 포스팅, 월 1회 웨비나 기획 및 실행처럼 구체적인 업무가 명시된 직무기술서는 지원자가 스스로 판단하게 만듭니다. 나는 글쓰기를 싫어하니 이 직무와 맞지 않겠다고 생각하거나, 데이터 리포트 작성이 내 강점이니 꼭 지원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죠. 이는 우리 회사가 원하는 인재는 끌어당기고 맞지 않는 인재는 미리 걸러내는 가장 강력한 필터 역할을 합니다.
셋째, 조기 퇴사를 막아줍니다. 조기 퇴사의 가장 큰 이유는 생각했던 업무와 달라서입니다. 직무기술서는 지원자에게 보내는 솔직한 초대장입니다. 당신이 입사하면 이런 일을, 이런 방식으로, 이런 동료들과 하게 됩니다라고 미리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지원자는 입사 후 겪을 현실을 미리 가늠할 수 있고 회사는 입사 후에 딴소리하는 상황을 막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채용 이후 모든 HR 활동의 기준점이 됩니다. 잘 만든 직무기술서는 단순히 채용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 문서는 입사 후 신규 입사자의 성과 관리 기준이 되며 공정한 평가의 근거가 됩니다. 또한 향후 직무를 재배치하거나 조직을 개편할 때도 이 직무기술서가 모든 HR 활동의 가장 중요한 기준 문서가 됩니다.
작성 전 흔히 하는 3가지 실수
'어떻게'를 알기 전에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 아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실패하는 직무기술서는 3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실수 1: 슈퍼맨 찾기 (과도한 필수 요건)
경력 3년에 포토샵, 영상 편집, 데이터 분석, GA 활용, 광고 운영까지 가능한 사람을 찾는 식이죠. 이는 직무기술서가 아니라 희망 사항 목록입니다. 이런 공고는 지원자에게 위압감을 줍니다. 정말 뛰어난 인재는 이 회사는 아직 본인들이 뭘 원하는지 모르는구나라고 생각하고 지원을 포기합니다.
실수 2: 추상적인 단어 남발하기 (모호한 성향)
긍정적인 태도, 열정적인 마인드, 꼼꼼한 성격, 원활한 커뮤니케이션. 이런 단어들은 아무런 정보도 주지 못합니다. 세상에 자신이 긍정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지원자는 없습니다. 이런 모호한 단어 대신 우리가 원하는 행동을 묘사해야 합니다.
실수 3: 회사 자랑만 하기 (업무 내용 부재)
업계 최고 대우, 자유로운 연차 사용, 최고급 커피 제공, 가족 같은 분위기. 복지는 중요하지만 지원자가 가장 궁금한 것은 그래서 내가 입사하면 무슨 일을 하는가?입니다. 어떤 업무를 하는지 구체적인 설명 없이 복지 혜택만 나열하는 것은 지원자에게 신뢰를 주지 못합니다.
작성 전 필수 체크! 법적 유의사항
직무기술서는 회사의 공식적인 문서이므로 법적 문제를 피하기 위해 최소한 두 가지만큼은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첫째, 직무와 무관한 차별적 조건을 기재해서는 안 됩니다. 남녀고용평등법이나 고용정책 기본법 등에 따라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연령, 출신 지역, 신체 조건, 학력 등을 제한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법적 분쟁의 소지가 될 수 있습니다.
둘째, 업무 내용 및 근로 조건을 사실대로 명시해야 합니다. 채용절차법에 따라 연봉이나 복지, 업무 범위를 허위로 과장해서는 안 됩니다. 채용 공고와 실제 근로 조건이 다를 경우 이는 조기 퇴사의 가장 큰 원인이자 법적 분쟁의 소지가 됩니다.
'우리 팀원'을 끌어당기는 직무기술서 작성 4단계
거창한 템플릿은 필요 없습니다. 아래 4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순서대로 적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1단계: 이 사람을 왜 뽑아야 하는가?
직무기술서를 작성하기 전 내부적으로 가장 먼저 합의해야 할 질문입니다. 우리는 왜 이 포지션을 채용하려고 하는지, 이 사람이 입사해서 6개월 안에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는 무엇인지, 만약 이 사람을 뽑지 못하면 당장 어떤 업무가 마비되는지 등에 대해 명확한 답이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마케터를 뽑는다면 그 목적은 매출 증대일 수도, 브랜드 인지도 상승일 수도, 리드 확보일 수도 있습니다. 목적에 따라 필요한 사람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2단계: 이 사람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
1단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 사람이 입사 첫날부터 해야 할 주요 업무를 정의합니다. 초등학교 5학년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구체적으로 적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때 빈도와 결과물을 함께 명시하면 가장 좋습니다.
(X) 나쁜 예시: 블로그 운영, 광고 관리, 고객 응대
(O) 좋은 예시 (마케터):
주 2회 1500자 분량의 SEO 최적화 블로그 포스팅 작성 및 발행
월 1,000만 원 예산의 네이버/구글 키워드 광고 운영 및 주간 성과 리포트 작성
월 1회 신규 고객 대상 프로모션 이메일 기획, 작성, 발송
(O) 좋은 예시 (경영 지원):
월 1회 급여대장 작성 및 급여 이체 (약 30명 규모)
월 1회 부가세 신고를 위한 매입/매출 세금계산서 정리
일 평균 10건 내외의 고객 문의 전화 및 채팅 응대
이렇게 구체적으로 명시하면 지원자가 스스로 판단하며 1차 필터링이 일어납니다.
3단계: 이 일을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2단계의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지원자가 반드시 갖춰야 할 능력과 있으면 좋은 능력을 구분해야 합니다.
1) 필수 자격 요건
이는 이것 없으면 입사 첫날부터 2단계의 업무가 불가능하다는 최소한의 자격입니다. 여기서 슈퍼맨을 찾으려는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정말 필요한 3~5개만 남기는 것이 좋습니다.
(X) 나쁜 예시: 경력 3년 이상, 엑셀 능력 상, 포토샵 가능자
(O) 좋은 예시 (마케터):
네이버 또는 구글 키워드 광고를 직접 세팅하고 운영해 본 경험
GA(구글 애널리틱스)를 통해 유입 데이터를 분석하고 리포트를 작성해 본 경험
(O) 좋은 예시 (경영 지원):
엑셀 피벗 테이블과 VLOOKUP 함수를 활용해 데이터를 취합할 수 있는 능력
더존 또는 위하고를 사용한 급여 처리 및 세금계산서 발행 경험
고객 클레임 응대 및 문제 해결 경험 1년 이상
2) 우대 사항
이는 필수 요건은 다 갖췄는데 이것까지 있으면 더 좋다는 보너스 점수입니다. 이 항목은 많아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이 항목이 없다고 해서 지원자를 탈락시켜서는 안 됩니다.
(O) 좋은 예시:
B2B SaaS 업계 근무 경험
이메일 마케팅 툴 사용 경험
간단한 포토샵 배너 수정 가능자
3) 필요한 성향
꼼꼼함, 열정 같은 추상적인 단어 대신 우리 팀의 일하는 방식과 맞는 행동을 묘사해야 합니다.
(X) 나쁜 예시: 긍정적이고 밝은 성격, 원활한 커뮤니케이션 능력
(O) 좋은 예시:
데이터의 작은 오류도 스스로 찾아내고 수정하는 것에 익숙한 분
월 100건의 고객 문의를 응대하며 반복되는 질문에도 친절함을 유지할 수 있는 분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기다리기보다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책을 제안하는 분
4단계: 왜 우리 회사여야 하는가?
작은 기업일수록 이 부분이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지원자는 업무만 보고 지원하지 않습니다. 환경과 문화, 성장 가능성을 보고 결정합니다. 대기업처럼 많은 연봉이나 완벽한 복지를 제공할 수 없다면, 우리 회사만이 줄 수 있는 진짜 매력을 솔직하게 어필해야 합니다.
(X) 나쁜 예시: 가족 같은 분위기, 자유로운 연차 사용, 간식 무한 제공
(O) 솔직한 예시 (자율성이 중요한 문화):
저희는 10명 규모의 팀으로 대표님이 사소한 것을 지시하지 않습니다.
본인이 직접 업무를 계획하고 실행하며 성과를 내는 것을 즐기는 분에게 최고의 환경입니다.
반대로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지시를 선호하는 분과는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O) 솔직한 예시 (성장이 중요한 문화):
솔직히 말씀드리면 일이 많고 속도가 빠릅니다.
하지만 1년 뒤 다른 회사 3년 차보다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성장했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회사의 성장과 함께 내 몸값을 빠르게 높이고 싶은 분을 환영합니다.
바로 복사해서 쓰는 직무기술서 템플릿
위 4단계를 바탕으로 아래의 간단한 템플릿에 내용을 채워보세요.
[채용 포지션]
[우리 팀은 이런 일을 합니다]
[주요 업무]
[필수 자격 요건]
[우대 사항]
[이런 분과 잘 맞아요]
[우리 팀이 제안하는 것]
[혜택 및 근무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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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무기술서는 우리와 맞는 사람을 찾는 나침반입니다
급하게 사람을 뽑으려고 하면 우리는 다시 느낌에 의존하는 채용을 반복하게 될 것입니다.
직무기술서는 채용 공고를 위한 단순한 서류가 아닙니다. 직무기술서는 우리 회사 내부의 설계도이자, 우리와 꼭 맞는 인재를 찾아주는 나침반입니다. 채용 공고는 이 설계도를 바탕으로 지원자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만든 광고지죠.
오늘 설명해 드린 4단계를 바탕으로 우리 회사와 함께 성장할 진짜 우리 팀원을 정의하는 직무기술서를 미리 작성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탄탄한 직무기술서 한 장이 채용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